A demonstration Life Vitae — 박순자 (Park Soon-Ja) is illustrative, created to show what the format holds. Begin a real one.

박순자 (Park Soon-Ja)

애넌데일에서 31년간 세탁소를 꾸린 할머니

1947 · 버지니아주 애넌데일

교회 친구가 이런 것을 만들었다기에 나도 해 봅니다. 우리 손주들이 한국말이 서툴러도 번역이 된다고 하니, 할머니 이야기를 여기 남겨 둡니다.

지금 이 순간의 장

요즘의 나날

세탁소는 2012년에 넘겼습니다. 남편은 2010년에 쓰러진 뒤로 오른손이 말을 안 듣지만, 와이셔츠 다림질만큼은 아직도 저보다 낫다고 우깁니다. 우기게 둡니다. 요즘은 새벽 기도를 가고, 화요일에는 교회 지하에서 새로 온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칩니다 — 사십 년 전에 제가 배우던 그 교실에서요. 인생이 그렇게 한 바퀴를 돕니다. 손주가 다섯인데, 그 아이들이 제 한국말 절반을 알아듣고, 저는 그 아이들 영어 절반을 알아듣습니다. 합치면 온전한 대화 하나가 됩니다. 그거면 됩니다.

이민 이야기

1974년, 김포에서

"망한 자리에서도 아이는 자랍니다."

스물일곱에 대구를 떠났습니다. 남편의 사촌이 워싱턴 근처에 일자리가 있다고 했고, 그 '일자리'는 도착해 보니 절반쯤만 사실이었습니다. 이민이 다 그렇습니다. 첫 가게는 망했습니다. 그 얘기를 다들 빼고 말하는데, 저는 넣고 말하겠습니다. 첫 가게는 망했고, 우리는 남의 집 지하방에서 두 해를 살았고, 그 지하방에서 딸아이가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망한 자리에서도 아이는 자랍니다. 1981년에 애넌데일에 세탁소를 열었고, 그 문을 삼십일 년 열었습니다. 망해 본 사람이 오래 합니다.

내가 배운 것들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 · 집과 환대

대구를 떠나던 날

비행기에서 운 것은 무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싸 주신 김치를 김포 공항에서 다 버리고 온 것이 그제야 생각나서였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제일 큰일인 줄 알았지요. 살아 보니 이민이라는 것은 큰 결심 한 번이 아니라 작은 이별 만 번입니다. 그래도 갑니다. 가서, 새 땅에서 김치를 새로 담그면 됩니다. 맛이 좀 다르면 어떻습니까. 그것이 그 땅의 우리 집 맛이 되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다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담그는 법만 가져가면 됩니다.

돈 · 일과 소명

현금 장사가 가르쳐 준 것

세탁소는 현금 장사입니다. 삼십일 년 동안 아침마다 금고를 열면서 배웠습니다. 돈은 거짓말을 안 합니다. 사람이 돈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지요. 장부는 한글로 적었어도 숫자는 똑바로 적었습니다. 번 것보다 적게 쓰고, 남는 것은 아이들 학비로 보내고, 금고가 비는 날도 부끄러운 적은 없었습니다. 돈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돈에 대해 거짓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녀 키우기 · 가족 갈등과 화해

두 언어 사이에서 키운 아이들

딸아이는 변호사가 되었고, 한국말을 잊었습니다. 전화를 하면 저는 한국말로 묻고 아이는 영어로 대답합니다. 삼십 년을 그렇게 했습니다. 옛날에는 그것이 서러웠는데 지금은 압니다. 그 영어 대답 속에 효도가 들어 있다는 것을요. 말이 반만 통해도 마음이 다 통하는 수가 있고, 말이 다 통해도 마음이 반도 안 통하는 수가 있습니다. 두 언어 사이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 반쪽 대화를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느 나라 말로 하든, 사랑한다는 말은 다 들립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아이가 어느 나라 말로 대답하는지 보지 말고, 대답한다는 것을 보세요.

교육과 배움 · 실패와 좌절

마흔에 배운 영어

마흔 살에 교회 지하실에서 영어를 배웠습니다. 손님들에게 'ready Thursday' 말고 더 좋은 말을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창피했습니다. 마흔 살 먹은 여자가 ABC를 쓰고 앉아 있으니까요. 그런데 배우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창피한 사람은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피해서 시작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무엇이든 늦었다 싶을 때가 제일 빠른 때입니다. 지금 저는 그 교실에서 가르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창피함은 교실 문 앞까지만 따라옵니다.

집과 환대 · 우정과 공동체

말이 안 통해도 밥은 통합니다

영어를 못 하던 시절에도 저는 사람을 먹였습니다. 세탁소 뒷방에서 김밥을 싸서 옆 가게 청년에게, 우체부에게, 말 한마디 못 나누는 사람들에게 건넸습니다. 그 사람들이 사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의 친구입니다. 말이 안 통해도 밥은 통합니다. 낯선 사람,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묻지 말고 먼저 먹이세요. 무슨 말이 필요했는지는 밥을 다 먹고 나면 서로 알게 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묻지 말고 먼저 먹이세요.

요리법과 전통

차고에서 하는 김장

버지니아에서 사십 년 넘게 김장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배추를 못 구해서 양배추로 담갔는데, 그 맛은 잊어버리기로 약속합시다. 지금은 십일월 마지막 토요일에 차고에서 합니다. 딸은 변호사라 바쁘다면서 와서 제일 오래 있다 가고, 손녀는 고무장갑을 끼고 사진부터 찍습니다. 배추 마흔 포기, 다섯 식구, 입은 쉬지 않습니다. 김치는 핑계입니다. 김장은 일 년에 한 번, 식구가 식구인 것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편지

A letter

그레이스에게

그레이스야. 이 편지는 한국말로 쓴다. 네가 번역 버튼을 누를 것을 알기 때문이다. 괜찮다. 누르거라. 엄마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번역기를 한 번 거쳐야 닿는다는 것이 한때는 가시처럼 아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네가 법정에서 영어로 싸워 이기는 것이, 내가 평생 다림질로 편 셔츠보다 더 반듯하다. 너는 나의 영어다. 내가 끝내 다 배우지 못한 말을 네가 대신 다 해 주었다. 김장 때 오너라. 올해는 네가 절이는 것을 배울 차례다.

앞날의 바람

남기고 싶은 것

"정은 말이 아니라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이다."

재산 이야기가 아닙니다. 너희에게 바라는 것은 세 가지뿐입니다. 밥은 같이 먹어라. 바빠도 같이 먹는 밥이 가족이다. 새로 온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라. 사십 년 전의 나에게 누가 먼저 말을 걸어 주었는지 나는 다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말을 잊어도 된다. 대신 한국 사람이 어떻게 정을 주는지는 잊지 마라. 그것은 말이 아니라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이다.

맺음의 축복

기억해 준다면

대단한 사람으로 기억하지 마세요. 그냥, 셔츠를 맡기면 목요일에는 틀림없이 되어 있던 집. 배가 고프면 뒷방에서 김밥이 나오던 집. 그 정도면 한 인생으로 충분합니다. 나를 기억하고 싶거든 누구에게든 따뜻한 밥 한 끼 먹이세요. 그것이 나입니다.

"나를 기억하고 싶거든 누구에게든 따뜻한 밥 한 끼 먹이세요."